창의력을 키우는 프랑스 미술교육 프랑스 베르사유 미술학교 학과장이 전하는4차 산업 시대를 위한 인재교육 평론글 / 김명남의 순백의 작품김명남의 최근작을 바라보는 눈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눈은 도화지 표면에 스크래치를 낸 구멍 뚫기와 종이 찢기 작업을 간신히 인지해낼 뿐이다. 김명남은 이 행위를 통해 빛이 나타나도록 하였고 순백의 광채는 이미지의 청아함과 겨루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 특히 이브 클라인(Yves Klein)의 작품을 떠올리게 된다. 눈앞에 펼쳐진 김명남의 작품은 이브 클라인의 전시 ‘허공’ (1958)이나 ‘허공으로 뛰어들기’(1960)와 유사한 쟁점을 다루고 있다. 1957년에 클라인이 벨기에 안트베르펜에서 바슐라르를 인용하여 언급한 말을 환언하여 김명남의 작품에 대한 평을 할 수 있겠다: «우선 무(無)가 보인다. 그 다음 이 무(無)에는 깊이가 생기고, 그 후 순백의 입체감이 생겨난다.» 순결 무구함 및 여백에 대한 찬사라 할 수 있는 김명남의 작품들은 전적으로 급진적인(radicalité) 도구들의 경제성에 호소한다. 그가 송곳을 사용하여 보여주는 것은 종이도 캔버스도 아니고, 예술가의 행위 자체 그리고 사용된 도구의 흔적들이다. 오래 전의 규석이 역사적인 존재에 대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며 현재에도 여전히 생동하는 것처럼 말이다. 김명남의 예술은 통과라는 개념에 의해 요구되는 것이다. 그는 종이 조각을 사용한 독특한 미학 용어들을 제시하는데, 역설적이게도 이는 한계에 관한 개념이라는 시각에서 볼 때 새로운 관점으로 생각되는 조형 예술의 영역을 공고히 해 준다. 여기서 모든 것은 정도의 문제인데, 모든 것은 둘 사이에서 유희하고 모든 것은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질서와 혼돈 사이에서. 우연과 통제 사이에서. 불투명과 유광(乳光)사이에서.제작 재료에 대한 전반적인 고찰 및 작업에 사용된 여러 프로토콜을 넘어, 김명남의 순백의 작품은 무언의 기록과도 같은 선과 구두점이 빚어내는 유희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이미지의 면을 구성하고 리듬을 찾아내고 운율을 맞춤으로서 풍경을 묘사해 내는 종이의 돌출로 생겨나는 것이다. 이는 순결 무구하며 고요한 정신적 풍경으로, 우리 시대에 나타나는 시각적 장황함을 저지하며, 형언할 수 없는 어떤 외딴 곳으로 향하는 비범한 명상으로 우리를 이끄는데, 시인이 노래하였듯 그곳에서는 «질서, 아름다움, 호화로움, 고요, 관능이 도처에 넘쳐난다. » 필립 피게(Philippe Piguet)[출처] 프랑스 베르사유 미술대학 김명남 교수님 특강 (서울대 미술관 렉처홀)|작성자 귀큰여우창작소